여행과 일상의 경계에 사는 사람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남들이 여행으로 오는 곳에 한 번쯤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보는 일은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일 테다. 제주도에는 그런 꿈들이 모여드는 섬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생활자로서 살아보기 위해 한 달 살기 혹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등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이런 삶의 방식들이 이 섬에서는 익숙한 단어이자 행위로 자리 잡았다. 제주도의 많은 집들이 월세가 아닌 ‘연세(年貰)’라는 독특한 개념을 차용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개념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여기는 잠깐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섬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행의 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잠시 서울에 갔다가 다시 제주공항에 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다. 잔뜩 들뜬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짐짓 차분한 척, 익숙한 척 행동한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목적이 분명한 발걸음들을 통해서 나는 아무도 관심 없을 그 사실을 증명해내려 애쓴다. 거기엔 사람들이 잠깐 머무르다 떠나는 그 섬에서 ‘나는 살고 있다’는 일종의 우월감까지 서려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내 행동들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낯선 이 공간에 나를 욱여넣기 위한 행위들이라는 사실을.

여행과 일상은 공존할 수 없다. 여행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쉽고도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까지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겪고 싶어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행위와 여행에서 일상을 겪는 일은 소맥을 만들 때 맥주3에 소주1을 넣느냐, 소주3에 맥주1을 넣느냐의 문제만큼 다르다. 여행에서 편안함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일상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라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더 가깝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곤 한다. “제주도에서 살면 좋겠다.”, “제주도에서 살면 어때?”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멋쩍게 웃어 보이곤 한다. 그러니까, 대답은 사실 뻔한데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 역시 너무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저 순진함에 가까운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반면, 완전히 박살내버리고 싶은 욕구에 휩싸이곤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이 둘의 중간 점은, 그저 멋쩍게 웃어 보이는 것뿐이다.

장담컨대 나는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 이들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이 섬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우리만큼 아는 것이 없다. 좋은 게스트하우스니, 추천하는 맛집이니, 예쁜 바다라든지 하는 것들. 누구도 자기가 사는 곳을 두고 굳이 돈을 주고 게스트하우스를 가서 낯설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맛집이라곤 동네의(그나마도 근처엔 없고 차로 15분은 가야 나오는)해장국 집이라든지, 중국집 같은 곳들이다. 물론 파스타 집도 있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고, 종종 가는 술집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활자’로서의 초점에 맞춰진 곳들 뿐이다. 에어비앤비의 카피마냥 ‘여행은 살아보는거야’라지만, 여행자가 생활자의 삶에 잠시 쏙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생활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겐 구질구질한 삶의 요소들이 없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에 집 밖에 거의 한 두 번 나갈까 말까 한다. 내겐 집이 곧 사무실이자 일터이기 때문이다(집돌이인 내게는 정말 최고의 직장이 아닐 수 없다 카일루아 만세!(?)). 그런 내게 제주의 ‘핫한’ 곳을 묻는다니. 절레절레.

아, 물론 집에서 걸어서 15분 남짓 거리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고 기분 좋은 일이긴하다. 뒷산같이 버티고 서 있는 한라산을 보면서도 새삼 신기한건 매한가지다. 요즘 즐겨 보는 예능프로인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와 이효리가 노을지는 바다를 바라보던 장면에서는 문득 ‘아, 내가 저런 섬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화면 속의 노을지는 바다는, 제주도라는 섬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낯설게 재확인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방구석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지 7개월이 지났다.

제주도는 서울과는 다른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른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눅눅한 바람에 들러붙어 느릿느릿 흘러가다가도, 어느새 밤이 되고 잠을 잘 시간이 눈앞에 들이닥치곤 하는 곳이다. 시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으로 기우는 해를 보고 하루를 가늠한다. 아침에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 먹고 어영부영 컴퓨터로 글을 쓰고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된다. 이 곳에서의 내 하루는 식사준비를 기준으로 흘러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느리지만, 또 빠르게 흘러간다.

직접 해먹은 수플레 팬케이크. 남자 혼자 살지만 굉장히 잘 해 먹고 삽니다.

장을 보려면 차로 15분은 나가야 하고, 동네엔 편의점 하나 없어 저녁에 맥주 생각이 간절해도 참아야 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동네는 고요하고 한적하다(이 때문에 서울에 살 때보다 음주량이 확 줄어든 것은 장점이다. 나는 작년 한 해 벌었던 연봉의 2/3가량을 술값에 전부 써버렸음을 증명해주는 연말정산을 보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주위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소리가 공간을 밀도 있게 채운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고, 나는 제주에 내려와 산지 일주일 만에 느꼈다. 이곳에서 소리는 도시의 그것처럼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공기를 밀도있게 채우며 수렴한다.

요즘의 내 고민은 운전을 어서 배워야 하는데, 혹은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어야 하나 따위의 고민들이다. 서울에서 아침의 출근을, 저녁의 야근을, 축축한 동물의 내장 같은 지하철에 타는 내 몸뚱이의 고단함을 고민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고민이긴 하다(물론 카일루아 컨텐츠 팀의 방향과 계획, 컨텐츠 기획, 연말에 나올 책에 대한 것들도 고민이지만 이런 장기적인 고민들 말고).

그러니까, 내가 이 장황한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여행지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뻔한 얘기다. 여행지를 ‘여행자’로 오는 것과 ‘생활자’로 사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여행지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은 여행에서 느꼈던 침묵과 고요, 영감 어린 시간들을 조금 더 깊고 오래 느끼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행과 일상은 우리의 행동 양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누구도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내가 앞에서 열거한 일상을 보고 여행 같다 느낄 테고, 나 역시 아직 7개월 밖에(!) 살지 않아서 때로는 여행하는 듯이 살고는 있지만, 짧은 시간 제주도에 살면서 느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삶이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점이다.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고, 삶이라는 길고 지루한 직선 속의 짧은 강조점이라는 여행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더 반짝이는 법이니까.

7개월이라는 시간은 완벽한 제주도민도, 완벽한 여행자도 되지 못한 어정쩡한 경계인의 삶으로 정착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환상

노마드는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다. 원래 유목민이란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을 의미했다. 건조한 사막 지역에선 가축에게 먹일 풀이 있는 곳이 드물었고, 사람들이 살기엔 척박한 곳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이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아 계속해서 이주해야만 했다.

이런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현대의 철학적 개념으로 주요하게 인식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에서 ‘노마디즘(Nomad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노마드라는 용어의 철학적 접근을 가능케 했고, 이 단어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현재 우리가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다. 그는 책『21세기 사전(Dictionnaire du XXIe siècle)』을 통해 “사람들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 하에서 ‘정착’을 거부하고 ‘유목’으로 변모해 가며, 삶의 질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부유한 계급은 생산적인 곳을 선점하기 위해 유목의 길을 나설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동해야 하므로 결국은 누구나 유목민이 된다”며 디지털 노마드를 언급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디지털 노마드는 발달된 디지털 기기와 통신수단을 바탕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된 현대인의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오늘은 파리의 에펠탑 아래에서, 다음 주엔 피렌체의 카페에서, 다음 달엔 발리의 해변에서 해지는 석양을 보며 노트북 안에 펼쳐진 인터넷 세상에서 일하는 삶. 사람들이 생각하는 머릿속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이런 낭만적인 상상들이 가득 펼쳐져있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 노마드’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1%도 채 안 되는 사람들에 해당하리라 생각한다(당장 파리로, 피렌체로, 발리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턱턱 살 수 있을 정도라면 그것 만으로도 이미 상위 1%의 삶일테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여행과 일이 하나되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욕망이 말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디지털 노마드를 유유자적하며 여행하는 삶으로 보기 보다는, 원격근무의 한 형태로 보는것이 더 올바를 것이며, 자크 아탈리가 말한 현대인의 특징적인 부분에서 접근하는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일 테다.

아마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몽골의 유목민과 같은 삶을 2017년의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우리는 자그마한 방에서 1년 혹은 2년 동안 살다가 보증금과 월세의 인상, 혹은 계약 만료로 인한 재계약의 불발과 같은 이유 등으로 전세와 월세방을 전전하며 주기적으로 주거공간을 옮겨 다니고 이주를 강요당한다. 애초에 집을 가지겠다는 것 자체가 꿈이자 희망, 목표가 되어버린 곳에서 자기만의 집을 갖지 못한 자는 유목민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짐을 싸고 푸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곱씹게 되는 사람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한국 뿐 아니라 지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이건 얼핏 보기엔 짧은 여행의 여정을 일상 위에 길게 늘어놓은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돌아올 곳 없이 삶의 터전을 통째로 옮겨 다닌다는 점에서, 이는 여행보다는 차라리 유목민의 삶에 가깝다. 이런 유목민적인 삶이 낭만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왜 젊은이들이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대안적 삶에 끌리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상상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언론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디지털 노마드 = 여행하는 삶’이라는 상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나는 어떻게 자크 아탈리가 말한 개념이 이런식으로 변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이런 대안적 삶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도 세상엔 존재할 테다.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자크 아탈리가 말한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만이 조금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의 이주를 선택할 뿐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노마드 = 여행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깝다. 대다수 ‘가난한 계급’의 사람들은 월세에 밀리고, 계약에 밀려나 다른 곳으로의 강제 이주를 겪을 뿐이다. 이는 ‘여행하는 삶’보단 차라리 치열한 생존의 영역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디지털이라는 개념에 다시 한번 발목잡힌다. 그들은 인터넷이 원활히 되는 대도시나, 디지털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된 곳에서만 일할 수 있다. 일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도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종의 기술을 갖고 있는, 그 중에서도 더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들만이 일을 원활히 구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에 나타난 또 다른 양상의 계급화다.

실제로 나는 얼마전 6월 6일 부터 21일까지 떠나는 여행계획을 두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원격근무와 인터넷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내가 떠남으로써 생기는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일루아는 기본적으로 리모트 근무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인터넷이 원활히 보급되지 않은 곳에서의 리모트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건 리모트 근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허울 좋은 농땡이에 불과하다. 만약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다음 행선지를 고르는 많은 기준 중에 ‘인터넷 보급률’은 상위 3개 중의 하나에 포함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족쇄로 다가올 수 있다. 노동이 사람을 발목잡는 삶. 어쩐지 익숙한 현상이다. 노동이 사람의 행동 반경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는 야근에 치여 저녁조차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어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직장인들의 삶과도 묘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게다가 내가 속한 컨텐츠 팀은 그 특성상 직접 경험해보고, 현장에서 컨텐츠를 촬영 및 제작해야 한다는 여건을 갖고 있다. 컨텐츠를 멀리서 제작하겠다는 말은, VR(Virtual Reality)로 여자친구를 사귀겠다는 말 만큼이나 얼토당토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미리 사전에 촬영 및 취재를 해놓고 제작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 물론 나는 팀원들의 동의 하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는 곳은 ‘노마드’, ‘유목민’의 나라인 몽골이다. 몽골의 인터넷 사정이 좋았다면 고민의 깊이는 한층 얕았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은 여행이고, 삶은 삶이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결국 끝없는 방랑일 뿐이다. 여행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유행이 되는 이 시점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가 뜨거운 키워드로 떠오르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 노마드란 엄밀히 말하자면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여행과 노마드적 삶은 결코 같지 않다. 일과 삶을 둘 다 놓치기 싫어서, 혹은 노동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등을 보며 택하기엔 디지털 노마드란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일 것이다.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로움은 브루스 웨인 정도의 부자는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말했듯, 밥벌이는 지겨운 일이자 진저리나는 삶의 영역이다. 모든 것에 ‘밥벌이’라는 생존의 영역이 들러붙는 순간, 그것은 쉽사리 자신을 낭만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다.

디지털 노마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본인이 무한한 방랑의 길 위를 걸을 용기와 자신, 결단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장소는 제한되었으나 사유는 무한히 뻗어 나가는 사람과, 전 세계를 매일 같이 이동하면서도 사유가 갇혀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자유로운 사람이며 현대적 개념에서의 진정한 노마드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우리는 이미 모두 그리 좋지 못한 방향에서의 노마드적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차라리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질 들뢰즈 (2004).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서울: 민음사

자크 아탈리(1999). 21세기 사전 – 자크 아탈리의 미래 읽기(편혜원 옮김). 서울: 중앙M&B

서동욱, 노마드-철학에서의 유목민적 사유, 네이버 캐스트, 2010.10.24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회의를 망치는 사람

이번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회의를 망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해볼까 한다.

즉 회의를 망치는 사람이 나라는 소리다.

지난 팀원들과의 회의 말미쯤,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회의에서 나는 팀원들의 의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계속되는 회의에서의 내 필요성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좋지 않은데, 심지어 나는 저 생각을 말로 내뱉었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그날 내가 왜 그랬던 걸까?

그날 시간 가량 진행된 회의에서의 내용은 주로 컨텐츠의 방향에 대한 것들이었다.

주제자체가 내가 개입할 여지가 적은 분야이기도 했지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했다. 그래서 모르는 부분이 계속 나올 것이 분명했는데, 난 그날 회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기만 하고 있었을 뿐.

회의 : 여럿이 모여 의논하는 것.

회의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여럿이 모여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회의다. 즉 어떤 주제에 대해 여러 의견을 구하고, 각기 뻗어나간 여러 의견을 하나로 취합해 가는 과정이 회의다. 급진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단순히 듣기만 하는 사람은 회의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다. 사전적 정의대로라면, 회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이 필요할까? 게다가 그 사람이 동료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듣고만 있다면, 그런 사람은 더더욱 필요 없을 것이다. 그건  말을 듣고 동문서답하는 시리보다도 못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날 회의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다른 팀원이 말하는 것을 그냥 듣고 있었다. 듣고, 생각해보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닌 그냥 듣기만 했다. 회의는 의견의 교환이지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렇기에 다른 동료들도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날 내 의견을 말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회의 때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만들었다.

또한, 난 그 날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른 팀원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 관해서 물어봤을 때 직접 대답을 해주거나 아니면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다르게 설명해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질문을 하면 회의의 흐름을 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전형적인 질문 안 하는 한국인처럼 행동했다.

앞서 서술한 두 행동을 지금 와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나는 그날 회의 시간에 주로 나오던 이야기와 좀 다른 방향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왠지 쓸데없이 회의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귀찮아질 거 같으니까 스스로 내 의견을 억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러면 안 됐다. 사실상 직무유기나 다름없지 않나 싶다.

이쯤 되니 이러려고 회의에 참여했나 괴롭고 자괴감이 든다.

다만 반성문을 쓰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윗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있다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의견을 냄으로써 일종의 논쟁(?)을 시작할 수 있고, 오가는 논쟁과 합의 과정에서 좀 더 견고한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긴 회의는 서로간의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또한 의견을 내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내 분야에서도 내가 업무를 이끄는 것이 아닌 업무가 나를 끌고 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회의 때 동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업무의 진행 방향을 정한다. 하지만 회의 때 나온 모든 의견에 아무 이견 없이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이고, 업무 진행 방향에도 다른 의견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뭔가 아니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 회의에서 아무 의견도 제시하지 않다가 즉 어정쩡하지만 동의를 표했다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쉬울까? 아마 대다수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냥 업무를 진행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즉 업무가 나를 끌고 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진 서로가 함께 말을 하고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의도가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더 적극적으로 회의 때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것은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제주 가서 살고 싶어! 근데 제주 가서 ‘뭐’해야 해?

감귤과 관광, 그리고 부동산

28년 전쯤 부모님과 함께 한 제주
28년 전쯤 부모님과 함께 한 제주

80년대 제주로 신혼여행을 오셨던 부모님의 빛바랜 사진 속 제주의 모습은 푸르렀습니다. 사진속엔 형광색의 감귤과 구멍난 검은 화산암이 대비를 이뤘으며,  말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였죠.

그리고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제주는,
지난 5년새 통계치로도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내/중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국내 관광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붐비게된 제주에는 수없이 많은 숙박업소와 요식업소가 들어섰고, 이는 중국자본의 유입을 야기하며 부동산 / 건축 경기 호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제주를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 중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고, 변한 삶과 업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저 방문에만 머물지 않고 제주에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만 월 약1600명이 제주로 이주를 했습니다. 변화된 삶과 업에 대한 생각’이란 도시의 틀에 박힌, 차갑고, 빠른 템포에서 벗어난 나만의, 따뜻하고, 느린 템포에의 고민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주 일부 토지는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제주는 이제 감귤보다는 부동산이 핫한 섬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제 제주보다는 남해”혹은 “강릉”‘과 같은 기사가 다뤄졌고, 중국의 한한령이 시작된 요즘, 따스해진 날씨와 함께 북새통을 이뤄야 하는 ‘중문색달 해변’의 노점상 분들은 “관광객이 요즘 줄어도 너무 줄어서, 그냥 까먹으라고 내놓은 감귤박스를 1/10만 둬도 될 정도가 됬다”며, “요즘은 2개 노점마다 격주로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감귤 농사는 자식 농사’라는 이야기가 흔했던 이 곳 제주의 모습은 이미 많이 달라진 것이지요.

시름시름 앓는 제주

‘감귤왕국’에서 시작된 영광이 ‘국내 관광의 메카’라는 호칭으로 이어지며 얼마전까지 ‘부동산 금맥’으로 추앙받았지만,  지금 제주는 아픕니다.

쓰레기 지천인 주상절리
쓰레기 지천인 주상절리

하와이 뺨치는 자본과 인구의 역습으로 제주시는 66만명 전체 제주 인구의 약 73%인 48만명이 모여사는 시멘트 내음새 가득한 중형도시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주 안에만 35만대의 차량이 운행되며 이로 인한 교통체증이 생겨나고, 1인당 하루 배출하는 생활쓰레기가 전국에서 가장 높아지며 오폐수 처리시설의 용량이 초과되어 바다로 배출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육지에서의 기준과는 동떨어진 임금으로 임금격차까지 발생하는 곳. 어쩌면 서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벌어지는 곳이 이 곳 제주입니다. (자료 : 연합뉴스)

어쩌면 제주는 더이상 매력적인 섬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직 영글지 않은 제주의 다른 ‘키워드’

지금까지 제주를 관통했던 주된 키워드는 감귤, 관광, 부동산. 이 3가지 였습니다. 이들은 제주에서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물건’ 혹은 ‘물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주의 사람과 제주의 문화보다는 특산물, 멋진 풍광, 그리고 이를 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한마디로 인적 자원 보다는 물적 자원이 주를 이루는 섬이었죠. 자연스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한 육지와의 교류와 이를 통한 업무를 하기보단 제주에 중심을 둔 일거리에 몰두하게 됐습니다.

이와같이 기존에 주로 행해지던 제주에서의 일과 업무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제주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겐 관광지 혹은 별장 수준의 섬에 불과할겁니다.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기존의 업무 방식으로는 다른 종류의 일을 하기엔 다소 어려운 점들이 많은 곳이 제주입니다.

[리모트 업무 #2] “왜 리모트 업무?” 라는 질문에 대하여

분명 제주의 삶은 도시의 그 것보다 느립니다. 또한 육지와의 거리적인 제약 역시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도시의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을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 할애할 수 있고, 하루도 도시의 문명을 이용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저가항공의 발달로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저렴해진 비행기표는 원하는 때에 서울로 이동하여 도시문명을 즐길 수 있게 해줬습니다. 결국 제주도에서의 삶은 어떤 삶을 살겠느냐에 대한 본인의 뜻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이처럼, 제주의 삶에 대한 환경은 다양한 개인을 매료시켜 제주로 이주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IT를 비롯한 디자인, 예술 분야의 다양한 개인/기업들이 제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카페에서 업무하는 모습
카페에서 업무하는 모습

여기 제주에, 삶과 업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몸소 거치며 제주를 다채롭게 하고자 하는 개인/그룹들이 있습니다. 무작정 제주에 내려와 제주에서의 일을 찾는다거나, 자신의 전문영역을 ‘리모트’라는 업무형태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리모트 할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스스로를 PR해야하며’, ‘제주의 삶과 창업을 병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래는 이런 방법을 터득하기 위한 좋은 팁이자 첫 단추들입니다.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

제주에서 개발자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REMOTE’ + ‘프리랜서’ 일이 필요하다는 것과, 개발자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개발자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로,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가 있으면 어떨까? 제주에 내려온 프리랜서는 기질상 외톨이가 많을 것 같지만 그래도 느슨한 정보 공유 커뮤니티가 있으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by 김종욱님의 글을 보고 시작된 그룹입니다.

2015년부터 가족과 함께 제주에 정착한 E-Book 작가 박산솔님이 한국 첫 탑텔(toptal)러 김종욱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만든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는 가장 캐주얼하면서도 제주 프리랜서들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개발자, 디자이너라면 이 커뮤니티에서 그간 나눠진 대화와 자료만 보아도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들과 어려움/해결책에 대해 감을 잡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 IT 프리랜서 모임 현장 (photo from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 by Nasol Kim‎, July 28, 2016)
제주 IT 프리랜서 모임 현장 (photo from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 by Nasol Kim‎, July 28, 2016)

더불어 직접 제주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제주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질문을 통해 여러 방면으로 제주의 삶을 문의할 수있음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콜라보/직접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제주 IT 프리랜서 커뮤니티는 제주시에 집중된 일자리, 창업, 만남의 기회를 서귀포 지역까지 넓혀 더 많은 제주의 숨은 능력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제주 창조경제 혁신센터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다른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와는 조금 다르게 제주 IT 역사의 레전드 였던,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이어진 ‘카카오’와 협업 관계를 맺고 있는 ‘정부기관’ 입니다. 센터가 가진 방향성 또한 관(官)이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는 형태가 아닌, 관의 주도로 할 수 있는 부분은 관이 담당하고 개인과 기업이 자연스례 형성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주 창조경제 혁신센터의 협업공간인 J-Space의 경우는 ‘제주크레비티’, ‘런치합시다’ ‘사업 피칭 데이’와 함께 ‘제주 한달 체류 지원’ 등 제주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제주로의 정착을 생각하는 여러 지역의 다양한 재주꾼들이 모이는 장이기도하며 코워킹(Co-Working)공간 또한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협업하는 모습
2015년 10월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해커톤에 참여하다

카일루아의 프로그래머 김동하님과도 2015년 10월에 있었던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주최의 해커톤을 통해서 한팀으로 처음 만나게 되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센터의 위치가 제주 시내에 있는 관계로 제주의 풍광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며, 창업과 관련한 내용이 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오픈 컬리지 ‘제주’ 

다음으로 지난해 제주 서귀포 중문에 2번째로 문을 연 ‘오픈 컬리지’가 있습니다. 오픈 컬리지 ‘서울’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있는 능력자들이 서로의 이야기, 재능을 공유하는 곳으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위 ‘힙’한 곳이었습니다. 왜 오픈 컬리지가 제주에 그것도 서귀포 중문에 2번째로 문을 열게된 경위(?)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오픈 컬리지 제주를 통해 제주의 숨은 고수들이 속속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제주에서의 삶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천에 널린 바다가 그들의 서핑 스팟이기도 하고, TV 대신 가족과 함께 올레길을 걷고 바다를 보고 오름에 오를 수 있기도 하고, 콘크리트 숲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화려한 불빛 속 외식/회식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곳이 제주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느린 나만의 시간
제주의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느린 나만의 시간

하지만 이런 삶에 대한 로망만 가득한 채 업에 대한 고민과 대책 없이 내려온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다시 한번 느끼며 쓸쓸하게 제주를 떠나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1-2달 체류하고 정착 하기도 하지만, 막상 그 기간이 장시간 지속되지는 못하는 이유일겁니다.

제주가 나아가야할 방향

농업 위주의 제주 인력 구조는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후에 일어난 관광 산업의 붐에 급하게 맞춰가느라 ‘제주를 온전히 지켜가는’ 방향으로 그 이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주의 농업도, 관광도 시들해져가는 이 시점에 부동산 호황마져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지금이 제주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제주가 제주다울 수 있으면서도 그 스스로가 다음세대를 위해 준비할 기회. 감귤, 한라산 소주, 천해의 환경을 이야기 하며 구태연한 제주만을 헐떡거리면서 채워가는 것이아니라, 제주의 모습을 밖으로 공유하고 밖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며 농업, 관광업에서 더 나아가 삶과 을 고민하고 개선해 나갈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 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컨텐츠랩 ‘카일루아’

카일루아‘는 단순한 제주 여행 컨텐츠의 제공을 넘어서 제주라는 곳의 정체성을 찾아 컨텐츠로 개발하고 그 컨텐츠가 제주를 원하는 다양한 사용자층의 입맛에 맞춰 제공될 수 있는 기술적, 심미적 요소를 담은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트래픽 시장에 얽매인 컨텐츠 시장에서 벗어나 사용자에게 개별화된 컨텐츠를 제공하고 여기에서 나온 인사이트가 다시금 컨텐츠에 재활용 될 수 있는 과정은 딥러닝과 AI로 이야기되는 IT 분야와 시각적인 영상/컨텐츠 분야 뿐만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과 업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에 대한 우리들의 미래의 이야기
제주에 대한 우리들의 미래의 이야기

그래서 ‘카일루아’는 IT,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서로 협업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을 중시하고’, ‘빠른 발전보다는 담론을 나누기도 하며’, ‘그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삶과 업’의 과도기 이후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봄날이 옵니다

따스한 봄내음이 제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카일루아 뿐만 아니라 제주의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진짜 봄날을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봄날이 다만 제주를 위한 것에서 넘어서 우리들의 미래를 위한, 봄날을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놀러오세요. 이야기하러 오세요. 그러다 함께해요.
제주에서, 카일루아와 함께.

너와 나에게 도움되는 콜라보 하고 싶은 사람!

 

노동자로서 존엄을 지키는 일

얼마 전 이태원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이엔 졸업과 취업으로 이어지는, 삶에 안개가 낀 것만 같던 시기가 있었다. 어떻게 잘 지내느냐고 연락하는 것조차 생략한 채 무언의 터널을 지나던 시기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벌써 2년 차 직장인 라이프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직은 학생으로 남아있고 또 ‘보통의’ 직장에서 생활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내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출근은 8시… 그럼 퇴근은 몇시?]
기본적으로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한다. 그날 만난 친구들 모두 입을 모아 저녁 8시에 나오면 일찍 나오는 거라고 말했다. 그보다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끝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럼 출근은? 9시에 출근하는 친구는 없었고 8시 아니면 그보다 더 빨랐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하루 평균 12시간 정도를 회사에서 보낸다고 했다. 여기에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더하면 하루 절반 이상을 회사 생활에 쏟는 셈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우리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특정 주간에 한해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일주일에 48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제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 누구나 이것이 ‘근로기준’이고 ‘보통’의 노동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작금의 비정상적인 근무시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물론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한다면 일주일에 12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우선 초과근무 시작과 종료 시각은 전적으로 근로자가 정할 수 있고 이 부분에 대해 양자 간 서면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반드시! 이를 연장하려는 경우엔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가 필요하다.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그리고 사용자는 이러한 초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제56조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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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5unday(선데이)에서 발행한 근로기준법 책

[비정상의 정상화]
여기까지 따라 왔으면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마디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1시에 퇴근시키는 건 불법이다. 회사들도 그걸 아는지 입사하는 날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받아낸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가관이다.
—–우선 야근・주말근무・조기출근 등으로 이어지는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은 표면적으론 ‘무급’이며 이는 모두 기본급에 포함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다. 이렇게 되면 수당을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 한 달에 내가 얼마나 야근했는지 셈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합법적(?) 노동력 착취로 이어진다. 아무튼 이런 서류에 서명을 시킨다고 한다.
—–둘째로 주휴수당・유급휴가・연차수당 등을 ‘포기’하는 서류에 서명한다. 이 또한 모두 기본급에 포함한다는 내용이다. 즉 노동자가 더 많은 휴일을 갖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이와 같은 짓을 저지르는 셈이다. 이런 이야길 들려준 친구에게 ‘너무 대놓고 불법 아니냐’고 물었더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관례’라는 답이 돌아왔다. 참고로 유럽에선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휴가가 일 년에 4-6주 주어지고, 이탈리아는 8주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
다른 말보다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는 말에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나는 왜 떠나야 하는가? 비정상적인 근무조건, 비정상적인 태도를 지닌 건 저 사람들인데 어째서 정상성을 원하는 내가 비정상이 되어야 하는 건가? 이토록 당연한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신 노동,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가? 어째서 나는 이런 이야길 꺼내면 ‘너는 우리나라에서 취업 못 하겠다’ 같은 소릴 들어야 하는가?
—–직종을 불문하고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절은 교회만큼이나 많다. 그리고 취업 ‘시장’에 내몰린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방식으로 비정상적 노동환경에 합류한다. 회사는 계속해서 근로자들에게 온건한 행복을 주입한다. 복지 혜택을 늘리고 문화 활동비를 지원하고 사내 모임, 사내 동아리를 장려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상성’이다. 다른 것도 아닌 법으로 명시된 정상성 말이다.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로 비정상이 정상이 되진 않는다. 그저 안일하고 한심한 태도를 보일 뿐. 이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이미 절 밖엔 줄이 길게 늘어섰다는 사실이다.
—–절 밖에 늘어선 줄 만큼이나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길게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내가 아직 학생이라서, 뭘 몰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돈 많이 주는 회사는 널렸다.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상식과 존엄을 다오.

제주행 편도티켓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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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제주에 있고,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제주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제주로 내려와 살게 됐다.

흔히 ‘제주에서의 삶’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 여유로운 삶,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한라산이 보이는 곳. 도시인들이 제주를 꿈꾸는 이유는 이제 도시에선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되어버린 그 풍경들 탓일테다.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꾸며 제주에 내려왔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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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에 다니던 직장에는 퇴사를 통보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는 꽤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회사는 내가 하는 일을 그리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고, 그런 곳에서의 내 시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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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부럽지 않은 직장이었다. 힘들었다면 솔직히 거짓말일테다. 실제로도 힘듦과는 거리가 먼 직장이었다. 적당한 연봉에, 소위 말하는 나인 투 식스가 지켜지는 직장.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집이 있는 인천과는 거리가 있었어도 뭔가 그럴듯한-소위 폼나는-직장생활도 영위했다. 친구들은 나더러 신의 직장에 다닌다고 말했다.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신촌으로 향해 대학 친구들과 돈 걱정 없이 술 한잔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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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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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상상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순진해서 코웃음이 쳐질 정도였다. 인천과 서울사이의 출퇴근길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싶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니’하고 묻고 싶어지곤 했다.

좁은 지옥철에서 하는 자리싸움은 마치 정글 같았고, 한 시간을 서서 가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치 고문과 같았다. 팽이버섯 같이 솟아있는 사람들의 검은 대가리 속에서 나는 늘 미간을 찌푸린 채 아침을 보내야만 했다.

이렇게 출근했으니, 당연히 회사에 도착했을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꾸역꾸역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길은 공허하기만 했다. 퇴근길에 바라보는 광화문 광장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그래서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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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으며, 제주로 내려왔다.

사실 제주라고 서울과 크게 다를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나는 절대로 제주도에서의 삶이 온통 낭만적 상상들로 가득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 느리게 흘러갈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외로움과 고독에 둘러싸여 길고 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집앞엔 편의점 하나 없고, 마트는 차로 15분을 달려야 나오는 동네. 명백하게 불편한 점들로 가득한 곳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직장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경직된 조직문화, 출퇴근의 지옥에 시달리다보면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 구조, 유동적인 출퇴근 시간 등을 가지는 스타트업에 대해 동경하거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마치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안정함, 내 일에 주어지는 무한한 책임감,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환상의 장막’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일수도 있다.

분명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회사를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한 번에 하나 결정하기에도 벅찬 인생의 가장 큰 선택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선택을 동시에 한 이유는, 이 나이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물 아홉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의 시간까지도 제주에서 스타트업 인으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이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오고 싶거나,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가고 싶어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내가 먼저 겪어보는 제주와 스타트업 생활기에 대한 글이다. 누군가에겐 퇴사 종용 글이 될수도, 누군가에겐 제주와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박살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글. 나는 앞으로 여기에 그런 글을 써내려갈 예정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현실 있는 그대로의 ‘제주의 삶’과 ‘스타트업 분투기’.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이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에 조금이나마 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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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온전히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형태로 타인이 생산해낸 결과물을 사용하는 형태 혹은,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생각을 나누고 해결 책을 찾아가는 ‘협업’을 하며 살아간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프로그래머 혼자 모든 일, 혹은 문제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들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협업을 한다.

그리고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의 의견을 듣게된다.

이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조금은 거친 언쟁도 날 수 있지만, 이 대화와 공유의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합의안을 만들고 일을 진행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새로운 개념을 서로가 학습하고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정말 의견충돌이 심할때는 종종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 될 수 있다. 합의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다.

시간 측면에서 보면 합의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은 낭비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당장 내 일 하기도 바쁜데, 회의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낭비라 생각될 수 있다. 그리고 회의시간에 자꾸 내 의견에 테클을 거는 저 사람이 정말 싫을 수도 있으며, 모두가 동의 하는 의견에 반대 의견을 제시해 회의 시간을 질질 끌어 최악의 순간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 반대 의견이 싫다고 깔아 뭉개면 구성원들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꺼려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조직내의 다양성이 사라질 것이다.

조직 전체가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되면, 혹은 아무도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때 지적을 할 수 있을까? 재밌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까?

다양성이 부족한 조직은 변화에 대응하기도 힘들고 쉽게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협업을 하는 사람이지, 소수 의견을 깔아 뭉개는 사람이 아니다. 가끔은 협업시스템 내에서 하나의 의견을 가지고 키보드 배틀을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듣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격 근무가 갖는 강점은 위에 나열한 토론을 빙자한 키보드 배틀이 솔루션을 활용함으로 인해, 모두 기록에 남는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댓글들...
어마어마하게 많은 댓글들… 풍선을 열어보면 더 많다…

누가 토론과 논의라는 전장에 참전했나 감시하기 좋다는게 아닌, 이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들을 다른 사람들(키보드 배틀에 참전하지 않은 사람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데에 그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합의과정에 이르는데 까지의 생각의 흐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이서 싸우고 나서 갑자기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담배를 피러가서 화해하고 합의하고 나오는 것과 같은 ‘막후’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프로그래머다.

하지만 단순히 기능 구현만 하는 프로그래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전장(?)에 참전하여 합의점을 잘 이끌어 내는것도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설계하고 실체화 시키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니까.

전장에서 합의된 내용을 실체화 시켜야 하는데, 합의가 잘 안되어 오락가락 한다면 내가 만드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것이다.

어떤 게임(이미 알고있으리라고 생각한다)에서 팀원간 합의가 안되어 캐릭터 선택도 제멋대로, 거점을 점령 또는 방어하는데 전선 유지도 안되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죽어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답은 빠른 선택 탈주다
그렇다면 답은 빠른 선택 탈주다

프로젝트에서도 게임과 마찬가지로 합의가 안되면 제대로 된 일을 해내기가 힘들다.

요구사항이 바뀌어 급하게 추가되는 기능, 만들다가 버려지는 것들,  검증시간의 부족, 그리고 늘어가는 한숨.

그에따라 나오는 결과물은 그 상태도 영 좋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내일도 또 다른 전장에 참전해 또 다른 합의점을 이끌어내려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아… 그 전장이 66번 국도라던가, 왕의 길이라던가 그런 전장은 아니다…

공무원과 기적의 티키타카

얼마전 제주 표선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성 투숙객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사 참고>

손님이 오랜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실종신고가 접수 됐었는데다행히 대정의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무사히 발견돼 범죄와 무관한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이났었다.

해프닝으로 끝난 이 사건 이외에도, 과거보다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관광객들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이는 제주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큰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제주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제주 안전여행지킴이’(줄여 안전지킴이) 서비스를 시작했다안전지킴이는 소형카메라와 GPS가 장착된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다.위급한 상황에 놓인 관광객이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에 녹화된 화면과 위치정보가 경찰로 전송되어 경찰이 신속히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있다.
(물론 관광객이 단말기를 반납하면 기록된 정보는 파기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좋은 서비스가 생각보다 홍보가 잘 되지않아,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부지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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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지킴이 단말기 [출처:제주 레저신문]

그래서 나는 이런 서비스가 관광객들에게 더 잘 알려주면 좋을것 같아 안전지킴이를 가지고 짧은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데일리제주와 제주도의 콜라보가 진행되어 제주도의 관광 안전정책을 다른 시선으로 홍보하는 협조관계가 될 수 있고, 제주 관광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담당 부서와 연락을 시도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안전지킴이’ 담당자를 찾지못해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하다 안전지킴이를 총괄하는 제주도청 관광정책과쪽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해당 과의안전지킴이를 담당하는 공무원 분께 안전지킴이를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고싶으니 보도자료나 기기제공 등 협조가 가능한지를 여쭤 보았고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보내기도 했지만 담당자는 여러 이유를 들어 콘텐츠 제작에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어필했다.

이거 실화냐...응
이거 실화냐…응 [출처:웃긴대학]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1. 제주 안전여행지킴이 단말기의 생산이 중단되어, 어플등으로 대체 될지도 모른다.
  2. 설사 유지된다 하더라도 아직 연초라서 잘 모르겠다.
  3. 제주 안전여행지킴이가 솔직히 여행자의 안전을 100% 보장할 수 없는데, 홍보를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4. 연초에 인사이동이 된지 얼마 안되서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지원을 해줘야할지 조금 시간이 필요할것 같다.

하나하나 듣고 있자니그냥 도와주기 싫은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더 얘기를 하는게 시간낭비인것 같고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3월 시즌 전에 제작해야 효과가 있다는 생각에, 보도자료로 나갔던 사진이나 영상원본, 이용통계들을 부탁해보았더니, 그런 자료들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제주시청, 서귀포시청쪽으로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시청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전화를 해안전 지킴이자료를 부탁드리자, 잠시만요라고 하고 수화기 넘어로 여행 안전지킴이가 뭔지 알아? 처음 들어보는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관할은 시청이 아니라 도청이라며 도청 관광진흥과 번호를 알려줬다이건 뭐 짜증을 내도 어디다 내야할지 혼란이 오는 상황이었다.

다시 도청에 전화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짜증을 내자 담당자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되려 나에게 화를 냈다

내가 이러려고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했나 괴롭고 자괴감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도자료가 제주도청 공보과를 통해 나갔을터이니 자료 확인을 부탁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몇분 뒤 다시 연락이 왔으나

너무 예전 자료라 찾질 못하고, 아마 없는것 같으니 신문사에 있는 영상이나 사진을 다운받아서 그냥 쓰셔도 무방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사기업에서 마음대로 공공재를 콘텐츠화 하는것이 문제가 될수도 있다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제주에 여행오는)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템이 더 많이 이용될수 있도록 관()이 신경쓰지 못한 부분을 민간 부분에서 적절하게 홍보해 줄수있는 부분마저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흐지부지 시키는 일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도 그리고 나와서도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지만

우리나라 일부(…) 공무원들의 티키타카 플레이는

이니에스타도 울릴 수준이다.

출근하지 않는 삶

전역하고 석 달 만에 첫 출근을 했다. 홍대 언저리에 있는 자그마한 디자인 펌이었다. 그 회사에서 나는 3개월 동안 인턴 디자이너로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그러니까 내가 ‘출근하는 삶’에 관해 말하는 것은 오직 그날 하루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본 것이다.

얼마 전 브로콜리너마저가 발표한 싱글 「단호한 출근」의 발매 인터뷰 영상에서 기타리스트 잔디는 말한다. 출근이란 (임금노동을 조건으로) 특정 시간대에 자기 신체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이라고.과연 그러하다.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릴 자유가 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날 것을 걱정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잠들 권리가 있다.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 임금노동자들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사실 우리가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잠자는 시간이나 일어나는 시간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표준 근로’ 내용에 속하지 않는 항목이니까. 그러나 어째서 우리는 근로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시간까지도 저당 잡힌 채 사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게 출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카일루아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단 하루도 출근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아침 9시에 깨어있지 않았으며 새벽 4시 이전에 잠들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견고하게 다져왔던 내 생활 패턴에 카일루아에서의 업무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근무환경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패턴이 달라지지 않으므로 나는 내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업무의 시간 대비 효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더러 생기기는 한다. 지금도 이런저런 툴들을 활용하고 있지만, 리모트 업무를 위한 솔루션이 아무리 잘 나와 있다고 한들 직접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지난 일여 년 동안 카일루아는 팀 내외부적으로 리모트 업무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해왔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리모트 초심자(?)에게도 안정적인 업무 궤도 진입을 유도할 정도의 노하우가 쌓였다.

누군가는 출근하지 않는 삶을 부러워하거나 이를 지나쳐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든 첫 출근의 기억을 안고 있는 이라면 한번 출근하지 않고 일하는 첫날을 경험해볼 것을 권한다. 첫 출근길에서 느꼈던 두렵고 설레지만 한편으론 피곤했던 마음 딱 그만큼 즐겁고 설레면서 아무렇지 않은 근무 1일째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리모트 업무 #7] 리모트 협업 내 리더의 역할

지난 글에서는 ‘협업의 문제와 의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리모트 협업에서 나타나는 장단점은 ‘툴’로 장점이 극대화될 수도 있고 그 단점을 줄여갈 수도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협업과 ‘툴’을 사용하는 ‘사람’의 역할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솔루션의 선택과 소통의 방식 등 리모트의 환경 구축은 업무 사이클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업무의 전반적인 모양새를 다듬고 팀원들과 함께 목표로 나아가는 리더의 역할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솔루션도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리모트 협업 내에서 팀을 빛나게 하는 리더의 역할과 고려사항에 어떤 부분들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팀원들 간의 소통법 이해하기

아사나(ASANA), 슬랙(SLACK), 행아웃(HANGOUT) 등 다양한 리모트 업무를 도와주는 솔루션들이 존재합니다. 이들 솔루션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해 팀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을 구성하고 있는 팀원들의 성향, 즉 그동안 팀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해왔고 새로 적용될 솔루션에서 각 팀원들이 부딪히게 될 어려움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가령 그동안 면대면의 업무에 익숙해 있고, 카카오톡과 같은 일시적 지시에 적응해 있는 팀원들에게 업무를 본인에 맞게 나누고 일정을 짜고 팀원들과 원활히 공유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활용하는 법을 설명하고 개인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한 해결책과 적응 시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리모트 업무 #5] 협업의 핵심, 그리고 솔루션의 선택

프로젝트 트레킹 및 큰그림 그리기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상황과 흐름을 파악하는데에는 위와 같은 솔루션적인 방식과 함께 인간적인 소통 방식이 필요합니다. 팀원들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너무 집중 한 나머지 다른 팀원 간의 1:1 혹은 1:다의 ‘크로스’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프로젝트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리더의 집요한 팔로잉보다는 팀원들이 하나의 문제에도 여러가지의 관점과 해결의 실마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서로 중복된 업무,  의도치 않은 업무를 하지 않도록, 한 발자국 뒤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진행될 준비 중인 프로젝트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분야 크로스
분야를 넘어서 서로 이야기 나눌 주제를 공유하는 역할

때로는 팀원들이 리더가 초기에 그린 방향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팀원들은 정해진 방향 속에서 해결책을 구현해 내는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또한 프로젝트가 리더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었을 때 그 결과는 ‘우리’가 만들어 간 것이 아닐 것입니다. 리더는 큰 틀에서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리더 또한 하나의 팀원으로 협력해 가며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만의 방식을 동의 없이 강요하는 ‘리더’라면 팀원들의 업무에 대한 회의와 함께 각 팀원들은 스스로의 분야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마져 생기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리더가 목표를 정하면 그 것을 팀원들은 그것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리더란 “팀의 가치관을 그리고 이 큰 그림이 팀원들과 공유되어 최상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전공유 마일스톤
비전을 함께 공유 방법 중 하나인 마일스톤

그렇다면 카일루아 팀의 가치관이란 무엇일까요? 저의 경우는 아래와 같습니다.

– 결과에 입각 한 업무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쪼개기
– 생각 공유하기
– 일만 생각하지 않기

정리하고 분류하기

프로젝트 간의 혹은 팀원 간의 교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프로젝트를 정리하여 한눈에 볼 수있어야 하며, 이들 간의 관계를 찾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때 ASANA와 같은 솔루션의 프로젝트와 서브 테스크 간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태그, 필드 등 분류 기능을 유용하게 활용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통해 리더 본인이 업무를 정리하고 분류하기 쉬워지기도 하지만, 함께 업무를 진행하는 팀원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아사나 필드 사용
필드 사용(우측 편의 여러 색 아이콘)으로 프로젝트 중요 사항이 눈에 띄도록 하는 방법

리더는 PM의 역할을 자처해야 합니다. 각 팀원들의 입장에서 중재를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업무의 진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빠진 부분 찾기

리더가 세부사항에 집중한 나머지 프로젝트 말미에 허겁지겁 빠진 부분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리더가 ASANA와 같은 솔루션을 활용하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팀원들과 업무를 조율 하는 과정에서 빠졌거나 보강되어야 하는 부분을 찾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반적 흐름 뿐만 아니라 세부적 흐름의 추적에 있어서 솔루션은 팀의 업무 진행을 원활히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아사나 캘린더 기능 활용
캘리더에 종합된 업무 과정을 보며 추가,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미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프로젝트 전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캘린더 기능과 데시보드 기능을 활용하여 전체에서 빠진 부분과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감지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공부

각 프로젝트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팀원들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령 디자이너가 진행하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줄 아며, 개발자가 현재 작업 중인 기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팀원들의 진행 업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이어주는 ‘링커’의 역할로 발현될 수 있으며, 각 팀원이 본연의 업무에 신경쓰느라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까지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리더 개인적으로 팀원의 개별 업무 분야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최근 다양한 분야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습니다. Udemy, Coursera와 같은 MOOC 플랫폼이 대표적이며, 각 강의는 짧은 강의들로 세분화되어 이동 중에도 편리하게 강의를 수강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Udemy에서 인기 강의 중 하나인 PM의 역할에 대한 강의
Udemy에서 인기 강의 중 하나인 PM의 역할에 대한 강의

모든 사람은 감정을 가졌다.

사람은 일 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항상 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 이 사실이 기계와 다른 인간다움을 통해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특히, 특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과 일의 경계선이 모호해 지고 회사 만들 생각하는 팀원이 있기도 하며, 리더가 팀원들의 삶보다는 일만을 강요하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이런 경우, 팀원 개인의 삶과 일에 대한 생각이 직접 회사의 운영 방식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함께 생각을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 뿐만아니라, 리더가 팀원들의 이러한 고민의 온도를 체감할 수 있는 준비도 필요합니다.

이런 준비과정에는 위에서 언급한 리더의 가치를 팀원들과 공유하는 것 외에도, 반기에 한번씩 팀원들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업무와 관련이 있지 않더라도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Gathering’ 행사를 진행 할수 있으며, 팀원들이 업무와 관련된 혹은 사적인 이유로 인한 어려움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사적인 이유를 리더와 공유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사내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강 상담사’를 모셔올 수도 있겠지요. 사람은 본디 항상 같은 감정상태를 가질 수 없음을 서로 이해하고 그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하는 과정을 가져보자는 의도입니다. 이런 부분은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되어 있어 민감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대안도 언급합니다.)

카일루아 알로하 게더링 파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카일루아 게더링 파티는 팀원들 뿐만 아니라 여러 전문가들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함께합니다.

최근에는 개인 심리상담을 온라인을 통해 진행할 수 있는 ‘트로스트‘라는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상담 서비스를 팀원 개인적으로 활용 할 수 있도록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고 일체의 결과 보고 등 없이, ‘고민을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 그 하나에 집중해  팀원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심리 상담의 경우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되고는 합니다만 서구권에서는 기업 내에서 ‘상담’이 갖는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담당 상담사가 상주하거나 지정 상담사가 있는 경우도 적지않습니다.

상담이 갖는 의미를 풀어보면, 작게는 삶의 행복, 회사에서의 업무 만족과 결과물부터 나아가, 가족과의 관계, 사회에 대한 관심 등에 대한 부분까지 팀원으로서 뿐만아니라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사람 답게 살 수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팀원들의 현 상태, 러닝 커브, 오버 로드 고민하기

위에서는 팀원들의 고민과 감정에 대한 리더의 대처였다면, 다른 면으로는 팀원들에 대한 업무와 관련된 ‘미래’, ‘관심사’, ‘비전’에 대한 부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분야에서 직능만을 수행하다보면 지루함에 빠질 수 있음과 동시에 팀원 스스로 ‘이 일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성장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입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쇄로 일관하다보면 결국 팀과 팀원은 서로에 대해 함께 할 이유가 없게됩니다. 팀원의 의문에 비전을 제시하고 팀원의 관심사에 대한 리더의 고민과 대처가 필요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한 MOOC 플랫폼 중 하나인 Udemy의 경우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강의가 존재하며, 이런 강의들을 기업차원에서 팀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Udemy for business‘ 서비스도 존재합니다.

Udemy for Business
Udemy에서 제공하는 사내 학습 플랫폼. 회사에서 결제해 주면 팀원은 그냥 사용하면 끝.

팀원 스스로 원해 본인의 분야에 대해 학습할 수도 있고, 업무와 관련 없는 분야에 대한 학습을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범주를 더욱 넓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서로의 미래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팀원들의 업무에 대한 적응도, 오버 로드를 파악할 수 있으며, 팀원 개인의 성장과 관련된 러닝 커브에 대해서도 서로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팀원이 생각하는 팀의 방향에 대해서도 서로 일치 시켜가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해 보자면,
리더는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업무적 시선 뿐만아니라, 팀원 각자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대변인의 역할까지도 마다하는 ‘전방위’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결론일 수도 있으나,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그 완벽하지 않음을 팀원과 리더 모두가 알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서로 간의 관심을 통해 함께 더 나은 모습의 개인과 회사로 발전시켜 보자’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리더만 열정적이여도 어렵고, 팀원만 열정적이여도 어려운 함께 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3달여 간 7회에 걸쳐서 카일루아 라는 회사가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는 리모트 업무와 관련된 문화와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저희 또한 처음 리모트를 도입하면서 뿐만아니라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사용하기도 하며, 팀원들과의 교감을 위해 다양한 소통 방식과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 실패, 노력들이 결코 헛되지 않은 ‘우리들의 삶의 건강’을 위한 것임을 알기에 앞으로도 이런 시행착오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도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함께해 주세요!

다음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ASANA, SLACK을 활용하는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다뤄볼까 합니다. 카일루아가 활용 중인 솔루션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댓글에 남겨주시면 블로그 작성시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리모트 업무 관련 연제 글

[리모트 업무 #1] 어떤 리모트 솔루션을 활용하시나요?

[리모트 업무 #2] “왜 리모트 업무?” 라는 질문에 대하여

[리모트 업무 #3] JejuITLook. 리모트를 위한 문화

[리모트 업무 #4] ‘독야청청’ 리모트 회사 ‘카일루아’ 입니다.

[리모트 업무 #5] 협업의 핵심, 그리고 솔루션의 선택

[리모트 업무 #6] 협업의 문제점과 진짜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