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의 경계에 사는 사람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남들이 여행으로 오는 곳에 한 번쯤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보는 일은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일 테다. 제주도에는 그런 꿈들이 모여드는 섬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생활자로서 살아보기 위해 한 달 살기 혹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등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이런 삶의 방식들이 이 섬에서는 익숙한 단어이자 행위로 자리 잡았다. 제주도의 많은 집들이 월세가 아닌 ‘연세(年貰)’라는 독특한 개념을 차용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개념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여기는 잠깐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섬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행의 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잠시 서울에 갔다가 다시 제주공항에 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다. 잔뜩 들뜬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짐짓 차분한 척, 익숙한 척 행동한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목적이 분명한 발걸음들을 통해서 나는 아무도 관심 없을 그 사실을 증명해내려 애쓴다. 거기엔 사람들이 잠깐 머무르다 떠나는 그 섬에서 ‘나는 살고 있다’는 일종의 우월감까지 서려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내 행동들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낯선 이 공간에 나를 욱여넣기 위한 행위들이라는 사실을.

여행과 일상은 공존할 수 없다. 여행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쉽고도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까지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겪고 싶어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행위와 여행에서 일상을 겪는 일은 소맥을 만들 때 맥주3에 소주1을 넣느냐, 소주3에 맥주1을 넣느냐의 문제만큼 다르다. 여행에서 편안함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일상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라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더 가깝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곤 한다. “제주도에서 살면 좋겠다.”, “제주도에서 살면 어때?”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멋쩍게 웃어 보이곤 한다. 그러니까, 대답은 사실 뻔한데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 역시 너무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저 순진함에 가까운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반면, 완전히 박살내버리고 싶은 욕구에 휩싸이곤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이 둘의 중간 점은, 그저 멋쩍게 웃어 보이는 것뿐이다.

장담컨대 나는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 이들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이 섬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우리만큼 아는 것이 없다. 좋은 게스트하우스니, 추천하는 맛집이니, 예쁜 바다라든지 하는 것들. 누구도 자기가 사는 곳을 두고 굳이 돈을 주고 게스트하우스를 가서 낯설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맛집이라곤 동네의(그나마도 근처엔 없고 차로 15분은 가야 나오는)해장국 집이라든지, 중국집 같은 곳들이다. 물론 파스타 집도 있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고, 종종 가는 술집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활자’로서의 초점에 맞춰진 곳들 뿐이다. 에어비앤비의 카피마냥 ‘여행은 살아보는거야’라지만, 여행자가 생활자의 삶에 잠시 쏙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생활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겐 구질구질한 삶의 요소들이 없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에 집 밖에 거의 한 두 번 나갈까 말까 한다. 내겐 집이 곧 사무실이자 일터이기 때문이다(집돌이인 내게는 정말 최고의 직장이 아닐 수 없다 카일루아 만세!(?)). 그런 내게 제주의 ‘핫한’ 곳을 묻는다니. 절레절레.

아, 물론 집에서 걸어서 15분 남짓 거리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고 기분 좋은 일이긴하다. 뒷산같이 버티고 서 있는 한라산을 보면서도 새삼 신기한건 매한가지다. 요즘 즐겨 보는 예능프로인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와 이효리가 노을지는 바다를 바라보던 장면에서는 문득 ‘아, 내가 저런 섬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화면 속의 노을지는 바다는, 제주도라는 섬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낯설게 재확인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방구석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지 7개월이 지났다.

제주도는 서울과는 다른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른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눅눅한 바람에 들러붙어 느릿느릿 흘러가다가도, 어느새 밤이 되고 잠을 잘 시간이 눈앞에 들이닥치곤 하는 곳이다. 시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으로 기우는 해를 보고 하루를 가늠한다. 아침에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 먹고 어영부영 컴퓨터로 글을 쓰고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된다. 이 곳에서의 내 하루는 식사준비를 기준으로 흘러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느리지만, 또 빠르게 흘러간다.

직접 해먹은 수플레 팬케이크. 남자 혼자 살지만 굉장히 잘 해 먹고 삽니다.

장을 보려면 차로 15분은 나가야 하고, 동네엔 편의점 하나 없어 저녁에 맥주 생각이 간절해도 참아야 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동네는 고요하고 한적하다(이 때문에 서울에 살 때보다 음주량이 확 줄어든 것은 장점이다. 나는 작년 한 해 벌었던 연봉의 2/3가량을 술값에 전부 써버렸음을 증명해주는 연말정산을 보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주위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소리가 공간을 밀도 있게 채운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고, 나는 제주에 내려와 산지 일주일 만에 느꼈다. 이곳에서 소리는 도시의 그것처럼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공기를 밀도있게 채우며 수렴한다.

요즘의 내 고민은 운전을 어서 배워야 하는데, 혹은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어야 하나 따위의 고민들이다. 서울에서 아침의 출근을, 저녁의 야근을, 축축한 동물의 내장 같은 지하철에 타는 내 몸뚱이의 고단함을 고민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고민이긴 하다(물론 카일루아 컨텐츠 팀의 방향과 계획, 컨텐츠 기획, 연말에 나올 책에 대한 것들도 고민이지만 이런 장기적인 고민들 말고).

그러니까, 내가 이 장황한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여행지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뻔한 얘기다. 여행지를 ‘여행자’로 오는 것과 ‘생활자’로 사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여행지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은 여행에서 느꼈던 침묵과 고요, 영감 어린 시간들을 조금 더 깊고 오래 느끼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행과 일상은 우리의 행동 양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누구도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내가 앞에서 열거한 일상을 보고 여행 같다 느낄 테고, 나 역시 아직 7개월 밖에(!) 살지 않아서 때로는 여행하는 듯이 살고는 있지만, 짧은 시간 제주도에 살면서 느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삶이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점이다.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고, 삶이라는 길고 지루한 직선 속의 짧은 강조점이라는 여행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더 반짝이는 법이니까.

7개월이라는 시간은 완벽한 제주도민도, 완벽한 여행자도 되지 못한 어정쩡한 경계인의 삶으로 정착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환상

노마드는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다. 원래 유목민이란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목초지를 찾아다니며 이동생활을 하는 민족을 의미했다. 건조한 사막 지역에선 가축에게 먹일 풀이 있는 곳이 드물었고, 사람들이 살기엔 척박한 곳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이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아 계속해서 이주해야만 했다.

이런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현대의 철학적 개념으로 주요하게 인식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에서 ‘노마디즘(Nomad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노마드라는 용어의 철학적 접근을 가능케 했고, 이 단어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현재 우리가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다. 그는 책『21세기 사전(Dictionnaire du XXIe siècle)』을 통해 “사람들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 하에서 ‘정착’을 거부하고 ‘유목’으로 변모해 가며, 삶의 질을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부유한 계급은 생산적인 곳을 선점하기 위해 유목의 길을 나설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이동해야 하므로 결국은 누구나 유목민이 된다”며 디지털 노마드를 언급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디지털 노마드는 발달된 디지털 기기와 통신수단을 바탕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된 현대인의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오늘은 파리의 에펠탑 아래에서, 다음 주엔 피렌체의 카페에서, 다음 달엔 발리의 해변에서 해지는 석양을 보며 노트북 안에 펼쳐진 인터넷 세상에서 일하는 삶. 사람들이 생각하는 머릿속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이런 낭만적인 상상들이 가득 펼쳐져있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 노마드’라 칭해지는 사람들의 1%도 채 안 되는 사람들에 해당하리라 생각한다(당장 파리로, 피렌체로, 발리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턱턱 살 수 있을 정도라면 그것 만으로도 이미 상위 1%의 삶일테다).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여행과 일이 하나되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욕망이 말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디지털 노마드를 유유자적하며 여행하는 삶으로 보기 보다는, 원격근무의 한 형태로 보는것이 더 올바를 것이며, 자크 아탈리가 말한 현대인의 특징적인 부분에서 접근하는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일 테다.

아마 우리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몽골의 유목민과 같은 삶을 2017년의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우리는 자그마한 방에서 1년 혹은 2년 동안 살다가 보증금과 월세의 인상, 혹은 계약 만료로 인한 재계약의 불발과 같은 이유 등으로 전세와 월세방을 전전하며 주기적으로 주거공간을 옮겨 다니고 이주를 강요당한다. 애초에 집을 가지겠다는 것 자체가 꿈이자 희망, 목표가 되어버린 곳에서 자기만의 집을 갖지 못한 자는 유목민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짐을 싸고 푸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곱씹게 되는 사람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한국 뿐 아니라 지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이건 얼핏 보기엔 짧은 여행의 여정을 일상 위에 길게 늘어놓은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돌아올 곳 없이 삶의 터전을 통째로 옮겨 다닌다는 점에서, 이는 여행보다는 차라리 유목민의 삶에 가깝다. 이런 유목민적인 삶이 낭만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왜 젊은이들이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대안적 삶에 끌리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하게 상상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언론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디지털 노마드 = 여행하는 삶’이라는 상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나는 어떻게 자크 아탈리가 말한 개념이 이런식으로 변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이런 대안적 삶을 가능케 하는 사람들도 세상엔 존재할 테다.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자크 아탈리가 말한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만이 조금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의 이주를 선택할 뿐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노마드 = 여행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깝다. 대다수 ‘가난한 계급’의 사람들은 월세에 밀리고, 계약에 밀려나 다른 곳으로의 강제 이주를 겪을 뿐이다. 이는 ‘여행하는 삶’보단 차라리 치열한 생존의 영역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디지털이라는 개념에 다시 한번 발목잡힌다. 그들은 인터넷이 원활히 되는 대도시나, 디지털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된 곳에서만 일할 수 있다. 일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도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종의 기술을 갖고 있는, 그 중에서도 더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들만이 일을 원활히 구할 수 있다. 이는 21세기에 나타난 또 다른 양상의 계급화다.

실제로 나는 얼마전 6월 6일 부터 21일까지 떠나는 여행계획을 두고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원격근무와 인터넷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내가 떠남으로써 생기는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일루아는 기본적으로 리모트 근무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인터넷이 원활히 보급되지 않은 곳에서의 리모트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건 리모트 근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허울 좋은 농땡이에 불과하다. 만약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다음 행선지를 고르는 많은 기준 중에 ‘인터넷 보급률’은 상위 3개 중의 하나에 포함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족쇄로 다가올 수 있다. 노동이 사람을 발목잡는 삶. 어쩐지 익숙한 현상이다. 노동이 사람의 행동 반경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는 야근에 치여 저녁조차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어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직장인들의 삶과도 묘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게다가 내가 속한 컨텐츠 팀은 그 특성상 직접 경험해보고, 현장에서 컨텐츠를 촬영 및 제작해야 한다는 여건을 갖고 있다. 컨텐츠를 멀리서 제작하겠다는 말은, VR(Virtual Reality)로 여자친구를 사귀겠다는 말 만큼이나 얼토당토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미리 사전에 촬영 및 취재를 해놓고 제작하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 물론 나는 팀원들의 동의 하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는 곳은 ‘노마드’, ‘유목민’의 나라인 몽골이다. 몽골의 인터넷 사정이 좋았다면 고민의 깊이는 한층 얕았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은 여행이고, 삶은 삶이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결국 끝없는 방랑일 뿐이다. 여행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유행이 되는 이 시점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가 뜨거운 키워드로 떠오르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 노마드란 엄밀히 말하자면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여행과 노마드적 삶은 결코 같지 않다. 일과 삶을 둘 다 놓치기 싫어서, 혹은 노동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등을 보며 택하기엔 디지털 노마드란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일 것이다.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로움은 브루스 웨인 정도의 부자는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소설가 김훈이 말했듯, 밥벌이는 지겨운 일이자 진저리나는 삶의 영역이다. 모든 것에 ‘밥벌이’라는 생존의 영역이 들러붙는 순간, 그것은 쉽사리 자신을 낭만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다.

디지털 노마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본인이 무한한 방랑의 길 위를 걸을 용기와 자신, 결단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장소는 제한되었으나 사유는 무한히 뻗어 나가는 사람과, 전 세계를 매일 같이 이동하면서도 사유가 갇혀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자유로운 사람이며 현대적 개념에서의 진정한 노마드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우리는 이미 모두 그리 좋지 못한 방향에서의 노마드적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차라리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질 들뢰즈 (2004).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서울: 민음사

자크 아탈리(1999). 21세기 사전 – 자크 아탈리의 미래 읽기(편혜원 옮김). 서울: 중앙M&B

서동욱, 노마드-철학에서의 유목민적 사유, 네이버 캐스트, 2010.10.24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제주행 편도티켓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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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제주에 있고,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제주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제주로 내려와 살게 됐다.

흔히 ‘제주에서의 삶’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 여유로운 삶,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한라산이 보이는 곳. 도시인들이 제주를 꿈꾸는 이유는 이제 도시에선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되어버린 그 풍경들 탓일테다.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꾸며 제주에 내려왔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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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에 다니던 직장에는 퇴사를 통보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는 꽤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회사는 내가 하는 일을 그리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고, 그런 곳에서의 내 시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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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부럽지 않은 직장이었다. 힘들었다면 솔직히 거짓말일테다. 실제로도 힘듦과는 거리가 먼 직장이었다. 적당한 연봉에, 소위 말하는 나인 투 식스가 지켜지는 직장.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집이 있는 인천과는 거리가 있었어도 뭔가 그럴듯한-소위 폼나는-직장생활도 영위했다. 친구들은 나더러 신의 직장에 다닌다고 말했다.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신촌으로 향해 대학 친구들과 돈 걱정 없이 술 한잔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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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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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상상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순진해서 코웃음이 쳐질 정도였다. 인천과 서울사이의 출퇴근길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싶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니’하고 묻고 싶어지곤 했다.

좁은 지옥철에서 하는 자리싸움은 마치 정글 같았고, 한 시간을 서서 가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치 고문과 같았다. 팽이버섯 같이 솟아있는 사람들의 검은 대가리 속에서 나는 늘 미간을 찌푸린 채 아침을 보내야만 했다.

이렇게 출근했으니, 당연히 회사에 도착했을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꾸역꾸역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길은 공허하기만 했다. 퇴근길에 바라보는 광화문 광장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그래서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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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으며, 제주로 내려왔다.

사실 제주라고 서울과 크게 다를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나는 절대로 제주도에서의 삶이 온통 낭만적 상상들로 가득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 느리게 흘러갈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외로움과 고독에 둘러싸여 길고 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집앞엔 편의점 하나 없고, 마트는 차로 15분을 달려야 나오는 동네. 명백하게 불편한 점들로 가득한 곳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직장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경직된 조직문화, 출퇴근의 지옥에 시달리다보면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 구조, 유동적인 출퇴근 시간 등을 가지는 스타트업에 대해 동경하거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마치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안정함, 내 일에 주어지는 무한한 책임감,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환상의 장막’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일수도 있다.

분명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회사를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한 번에 하나 결정하기에도 벅찬 인생의 가장 큰 선택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선택을 동시에 한 이유는, 이 나이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물 아홉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의 시간까지도 제주에서 스타트업 인으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이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오고 싶거나,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가고 싶어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내가 먼저 겪어보는 제주와 스타트업 생활기에 대한 글이다. 누군가에겐 퇴사 종용 글이 될수도, 누군가에겐 제주와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박살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글. 나는 앞으로 여기에 그런 글을 써내려갈 예정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현실 있는 그대로의 ‘제주의 삶’과 ‘스타트업 분투기’.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이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에 조금이나마 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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