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로서 존엄을 지키는 일

얼마 전 이태원에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이엔 졸업과 취업으로 이어지는, 삶에 안개가 낀 것만 같던 시기가 있었다. 어떻게 잘 지내느냐고 연락하는 것조차 생략한 채 무언의 터널을 지나던 시기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벌써 2년 차 직장인 라이프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직은 학생으로 남아있고 또 ‘보통의’ 직장에서 생활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내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출근은 8시… 그럼 퇴근은 몇시?]
기본적으로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한다. 그날 만난 친구들 모두 입을 모아 저녁 8시에 나오면 일찍 나오는 거라고 말했다. 그보다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끝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럼 출근은? 9시에 출근하는 친구는 없었고 8시 아니면 그보다 더 빨랐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하루 평균 12시간 정도를 회사에서 보낸다고 했다. 여기에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더하면 하루 절반 이상을 회사 생활에 쏟는 셈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우리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특정 주간에 한해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일주일에 48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제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 누구나 이것이 ‘근로기준’이고 ‘보통’의 노동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작금의 비정상적인 근무시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물론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한다면 일주일에 12시간까지 초과근무를 할 수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우선 초과근무 시작과 종료 시각은 전적으로 근로자가 정할 수 있고 이 부분에 대해 양자 간 서면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반드시! 이를 연장하려는 경우엔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가 필요하다.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그리고 사용자는 이러한 초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제56조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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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5unday(선데이)에서 발행한 근로기준법 책

[비정상의 정상화]
여기까지 따라 왔으면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마디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1시에 퇴근시키는 건 불법이다. 회사들도 그걸 아는지 입사하는 날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받아낸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가관이다.
—–우선 야근・주말근무・조기출근 등으로 이어지는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은 표면적으론 ‘무급’이며 이는 모두 기본급에 포함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다. 이렇게 되면 수당을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 한 달에 내가 얼마나 야근했는지 셈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합법적(?) 노동력 착취로 이어진다. 아무튼 이런 서류에 서명을 시킨다고 한다.
—–둘째로 주휴수당・유급휴가・연차수당 등을 ‘포기’하는 서류에 서명한다. 이 또한 모두 기본급에 포함한다는 내용이다. 즉 노동자가 더 많은 휴일을 갖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이와 같은 짓을 저지르는 셈이다. 이런 이야길 들려준 친구에게 ‘너무 대놓고 불법 아니냐’고 물었더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관례’라는 답이 돌아왔다. 참고로 유럽에선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휴가가 일 년에 4-6주 주어지고, 이탈리아는 8주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
다른 말보다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라는 말에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나는 왜 떠나야 하는가? 비정상적인 근무조건, 비정상적인 태도를 지닌 건 저 사람들인데 어째서 정상성을 원하는 내가 비정상이 되어야 하는 건가? 이토록 당연한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신 노동,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가? 어째서 나는 이런 이야길 꺼내면 ‘너는 우리나라에서 취업 못 하겠다’ 같은 소릴 들어야 하는가?
—–직종을 불문하고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절은 교회만큼이나 많다. 그리고 취업 ‘시장’에 내몰린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방식으로 비정상적 노동환경에 합류한다. 회사는 계속해서 근로자들에게 온건한 행복을 주입한다. 복지 혜택을 늘리고 문화 활동비를 지원하고 사내 모임, 사내 동아리를 장려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상성’이다. 다른 것도 아닌 법으로 명시된 정상성 말이다. 어딜 가나 똑같다는 말로 비정상이 정상이 되진 않는다. 그저 안일하고 한심한 태도를 보일 뿐. 이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이미 절 밖엔 줄이 길게 늘어섰다는 사실이다.
—–절 밖에 늘어선 줄 만큼이나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길게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내가 아직 학생이라서, 뭘 몰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돈 많이 주는 회사는 널렸다.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상식과 존엄을 다오.

제주행 편도티켓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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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제주에 있고,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제주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제주로 내려와 살게 됐다.

흔히 ‘제주에서의 삶’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 여유로운 삶,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한라산이 보이는 곳. 도시인들이 제주를 꿈꾸는 이유는 이제 도시에선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되어버린 그 풍경들 탓일테다.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꾸며 제주에 내려왔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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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에 다니던 직장에는 퇴사를 통보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는 꽤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회사는 내가 하는 일을 그리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고, 그런 곳에서의 내 시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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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부럽지 않은 직장이었다. 힘들었다면 솔직히 거짓말일테다. 실제로도 힘듦과는 거리가 먼 직장이었다. 적당한 연봉에, 소위 말하는 나인 투 식스가 지켜지는 직장.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집이 있는 인천과는 거리가 있었어도 뭔가 그럴듯한-소위 폼나는-직장생활도 영위했다. 친구들은 나더러 신의 직장에 다닌다고 말했다.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신촌으로 향해 대학 친구들과 돈 걱정 없이 술 한잔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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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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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상상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순진해서 코웃음이 쳐질 정도였다. 인천과 서울사이의 출퇴근길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싶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니’하고 묻고 싶어지곤 했다.

좁은 지옥철에서 하는 자리싸움은 마치 정글 같았고, 한 시간을 서서 가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치 고문과 같았다. 팽이버섯 같이 솟아있는 사람들의 검은 대가리 속에서 나는 늘 미간을 찌푸린 채 아침을 보내야만 했다.

이렇게 출근했으니, 당연히 회사에 도착했을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꾸역꾸역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길은 공허하기만 했다. 퇴근길에 바라보는 광화문 광장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그래서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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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으며, 제주로 내려왔다.

사실 제주라고 서울과 크게 다를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나는 절대로 제주도에서의 삶이 온통 낭만적 상상들로 가득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 느리게 흘러갈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외로움과 고독에 둘러싸여 길고 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집앞엔 편의점 하나 없고, 마트는 차로 15분을 달려야 나오는 동네. 명백하게 불편한 점들로 가득한 곳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직장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경직된 조직문화, 출퇴근의 지옥에 시달리다보면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 구조, 유동적인 출퇴근 시간 등을 가지는 스타트업에 대해 동경하거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마치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안정함, 내 일에 주어지는 무한한 책임감,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환상의 장막’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일수도 있다.

분명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회사를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한 번에 하나 결정하기에도 벅찬 인생의 가장 큰 선택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선택을 동시에 한 이유는, 이 나이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물 아홉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의 시간까지도 제주에서 스타트업 인으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이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오고 싶거나,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가고 싶어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내가 먼저 겪어보는 제주와 스타트업 생활기에 대한 글이다. 누군가에겐 퇴사 종용 글이 될수도, 누군가에겐 제주와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박살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글. 나는 앞으로 여기에 그런 글을 써내려갈 예정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현실 있는 그대로의 ‘제주의 삶’과 ‘스타트업 분투기’.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이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에 조금이나마 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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