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의 경계에 사는 사람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났다.

남들이 여행으로 오는 곳에 한 번쯤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보는 일은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일 테다. 제주도에는 그런 꿈들이 모여드는 섬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생활자로서 살아보기 위해 한 달 살기 혹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등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이런 삶의 방식들이 이 섬에서는 익숙한 단어이자 행위로 자리 잡았다. 제주도의 많은 집들이 월세가 아닌 ‘연세(年貰)’라는 독특한 개념을 차용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개념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여기는 잠깐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섬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행의 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잠시 서울에 갔다가 다시 제주공항에 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다. 잔뜩 들뜬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짐짓 차분한 척, 익숙한 척 행동한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과 목적이 분명한 발걸음들을 통해서 나는 아무도 관심 없을 그 사실을 증명해내려 애쓴다. 거기엔 사람들이 잠깐 머무르다 떠나는 그 섬에서 ‘나는 살고 있다’는 일종의 우월감까지 서려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내 행동들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낯선 이 공간에 나를 욱여넣기 위한 행위들이라는 사실을.

여행과 일상은 공존할 수 없다. 여행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쉽고도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까지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겪고 싶어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행위와 여행에서 일상을 겪는 일은 소맥을 만들 때 맥주3에 소주1을 넣느냐, 소주3에 맥주1을 넣느냐의 문제만큼 다르다. 여행에서 편안함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일상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라기보다는 낯선 곳에서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더 가깝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곤 한다. “제주도에서 살면 좋겠다.”, “제주도에서 살면 어때?”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멋쩍게 웃어 보이곤 한다. 그러니까, 대답은 사실 뻔한데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 역시 너무 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저 순진함에 가까운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반면, 완전히 박살내버리고 싶은 욕구에 휩싸이곤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이 둘의 중간 점은, 그저 멋쩍게 웃어 보이는 것뿐이다.

장담컨대 나는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 이들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이 섬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우리만큼 아는 것이 없다. 좋은 게스트하우스니, 추천하는 맛집이니, 예쁜 바다라든지 하는 것들. 누구도 자기가 사는 곳을 두고 굳이 돈을 주고 게스트하우스를 가서 낯설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맛집이라곤 동네의(그나마도 근처엔 없고 차로 15분은 가야 나오는)해장국 집이라든지, 중국집 같은 곳들이다. 물론 파스타 집도 있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고, 종종 가는 술집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활자’로서의 초점에 맞춰진 곳들 뿐이다. 에어비앤비의 카피마냥 ‘여행은 살아보는거야’라지만, 여행자가 생활자의 삶에 잠시 쏙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생활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겐 구질구질한 삶의 요소들이 없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에 집 밖에 거의 한 두 번 나갈까 말까 한다. 내겐 집이 곧 사무실이자 일터이기 때문이다(집돌이인 내게는 정말 최고의 직장이 아닐 수 없다 카일루아 만세!(?)). 그런 내게 제주의 ‘핫한’ 곳을 묻는다니. 절레절레.

아, 물론 집에서 걸어서 15분 남짓 거리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고 기분 좋은 일이긴하다. 뒷산같이 버티고 서 있는 한라산을 보면서도 새삼 신기한건 매한가지다. 요즘 즐겨 보는 예능프로인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와 이효리가 노을지는 바다를 바라보던 장면에서는 문득 ‘아, 내가 저런 섬에 살고 있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화면 속의 노을지는 바다는, 제주도라는 섬의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낯설게 재확인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방구석에 앉아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지 7개월이 지났다.

제주도는 서울과는 다른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른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눅눅한 바람에 들러붙어 느릿느릿 흘러가다가도, 어느새 밤이 되고 잠을 잘 시간이 눈앞에 들이닥치곤 하는 곳이다. 시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으로 기우는 해를 보고 하루를 가늠한다. 아침에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해 먹고 어영부영 컴퓨터로 글을 쓰고 일을 하다 보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된다. 이 곳에서의 내 하루는 식사준비를 기준으로 흘러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느리지만, 또 빠르게 흘러간다.

직접 해먹은 수플레 팬케이크. 남자 혼자 살지만 굉장히 잘 해 먹고 삽니다.

장을 보려면 차로 15분은 나가야 하고, 동네엔 편의점 하나 없어 저녁에 맥주 생각이 간절해도 참아야 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동네는 고요하고 한적하다(이 때문에 서울에 살 때보다 음주량이 확 줄어든 것은 장점이다. 나는 작년 한 해 벌었던 연봉의 2/3가량을 술값에 전부 써버렸음을 증명해주는 연말정산을 보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주위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소리가 공간을 밀도 있게 채운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고, 나는 제주에 내려와 산지 일주일 만에 느꼈다. 이곳에서 소리는 도시의 그것처럼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공기를 밀도있게 채우며 수렴한다.

요즘의 내 고민은 운전을 어서 배워야 하는데, 혹은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어야 하나 따위의 고민들이다. 서울에서 아침의 출근을, 저녁의 야근을, 축축한 동물의 내장 같은 지하철에 타는 내 몸뚱이의 고단함을 고민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고민이긴 하다(물론 카일루아 컨텐츠 팀의 방향과 계획, 컨텐츠 기획, 연말에 나올 책에 대한 것들도 고민이지만 이런 장기적인 고민들 말고).

그러니까, 내가 이 장황한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여행지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뻔한 얘기다. 여행지를 ‘여행자’로 오는 것과 ‘생활자’로 사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여행지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은 여행에서 느꼈던 침묵과 고요, 영감 어린 시간들을 조금 더 깊고 오래 느끼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만,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행과 일상은 우리의 행동 양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누구도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내가 앞에서 열거한 일상을 보고 여행 같다 느낄 테고, 나 역시 아직 7개월 밖에(!) 살지 않아서 때로는 여행하는 듯이 살고는 있지만, 짧은 시간 제주도에 살면서 느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삶이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점이다.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고, 삶이라는 길고 지루한 직선 속의 짧은 강조점이라는 여행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더 반짝이는 법이니까.

7개월이라는 시간은 완벽한 제주도민도, 완벽한 여행자도 되지 못한 어정쩡한 경계인의 삶으로 정착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