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 편도티켓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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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한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제주에 있고,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제주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올해부터 제주로 내려와 살게 됐다.

흔히 ‘제주에서의 삶’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 여유로운 삶,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고, 뒤를 돌아보면 한라산이 보이는 곳. 도시인들이 제주를 꿈꾸는 이유는 이제 도시에선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되어버린 그 풍경들 탓일테다.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꾸며 제주에 내려왔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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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에 다니던 직장에는 퇴사를 통보했다.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고는 꽤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회사는 내가 하는 일을 그리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고, 그런 곳에서의 내 시간은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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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부럽지 않은 직장이었다. 힘들었다면 솔직히 거짓말일테다. 실제로도 힘듦과는 거리가 먼 직장이었다. 적당한 연봉에, 소위 말하는 나인 투 식스가 지켜지는 직장.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집이 있는 인천과는 거리가 있었어도 뭔가 그럴듯한-소위 폼나는-직장생활도 영위했다. 친구들은 나더러 신의 직장에 다닌다고 말했다.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신촌으로 향해 대학 친구들과 돈 걱정 없이 술 한잔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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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기엔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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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상상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순진해서 코웃음이 쳐질 정도였다. 인천과 서울사이의 출퇴근길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싶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니’하고 묻고 싶어지곤 했다.

좁은 지옥철에서 하는 자리싸움은 마치 정글 같았고, 한 시간을 서서 가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치 고문과 같았다. 팽이버섯 같이 솟아있는 사람들의 검은 대가리 속에서 나는 늘 미간을 찌푸린 채 아침을 보내야만 했다.

이렇게 출근했으니, 당연히 회사에 도착했을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꾸역꾸역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길은 공허하기만 했다. 퇴근길에 바라보는 광화문 광장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그래서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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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카일루아 팀에 합류했으며, 제주로 내려왔다.

사실 제주라고 서울과 크게 다를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나는 절대로 제주도에서의 삶이 온통 낭만적 상상들로 가득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 느리게 흘러갈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외로움과 고독에 둘러싸여 길고 긴 사투를 벌여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집앞엔 편의점 하나 없고, 마트는 차로 15분을 달려야 나오는 동네. 명백하게 불편한 점들로 가득한 곳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직장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경직된 조직문화, 출퇴근의 지옥에 시달리다보면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 구조, 유동적인 출퇴근 시간 등을 가지는 스타트업에 대해 동경하거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건 지금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마치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안정함, 내 일에 주어지는 무한한 책임감,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환상의 장막’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일수도 있다.

분명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회사를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한 번에 하나 결정하기에도 벅찬 인생의 가장 큰 선택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선택을 동시에 한 이유는, 이 나이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물 아홉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의 시간까지도 제주에서 스타트업 인으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이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오고 싶거나,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가고 싶어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내가 먼저 겪어보는 제주와 스타트업 생활기에 대한 글이다. 누군가에겐 퇴사 종용 글이 될수도, 누군가에겐 제주와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박살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글. 나는 앞으로 여기에 그런 글을 써내려갈 예정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현실 있는 그대로의 ‘제주의 삶’과 ‘스타트업 분투기’.

앞으로 써내려갈 글들이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에 조금이나마 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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